구석구석 녹색교회 탐방
자연을 하나님께 되돌려 '드림'
교회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dream’이 떠올랐다. “자연 속에서 꿈을 꾸자는, 뭐 그런 교회 이름이겠구만” 싶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의미가 들어 있는 것도 틀린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예산에 내려가는 길에 질문이 생겨 도착 후 물었다. “목사님, 혹시 자연을 하나님께 되돌려 ‘드린다’는 뜻이기도 한가요?” 대답은 ‘그렇다’였다. 오, 이럴 수가! 조금 심심하게 느껴지던 교회 이름이 순간 장엄하게 변하며 새롭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로마서 8장을 통해 교회 이름의 힌트를 얻었다고 했다. ‘피조물들의 탄식’(롬 8:22)에 귀 기울이는 교회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정말 한국의 모든 교회가 자연드림교회의 모범을 좇아 자연을 하나님께 되돌려 드리는 거룩한 꿈을 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스킨스쿠버 좀 해본 목사
김신형 목사는 ‘공대’ 출신이다. 전자공학으로 학사, 석사 공부를 했다. 그런데 더욱 독특한 이력을 하나 갖고 있다. 대학을 다닐 때 ‘스킨 스쿠버’ 동아리에 몸을 담았다는 것이다. 목사들의 세계에서 분명 흔치 않은 일이다. 그의 삶이 궁금해졌다.
공대 공부를 마친 그는 감리교신학대학원을 거쳐 2010년에 목사 안수를 받고 ‘충남 예산’에서 첫 목회를 시작했다. 그곳은 산기슭에 자리 잡은 이름만 남은 교회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인 그곳에서 자연스레 ‘자연’과 함께하는 목회를 구상하게 되었다. 그래서 생태교육을 위한 공부를 시작했고, 숲해설 자격증도 취득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도시교회에서 부목사 제안을 받았다. 나름대로 목회적인 목표를 세워가는 중이었기에 고민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교회에 ‘환경팀’이 있다는 이야기에 결국 마음이 움직였다. 그렇게 6년간 ‘녹색 목회’를 마음껏 실험할 수 있게 되었다.
6년 후 다시 개척을 해야 하는 시간이 찾아왔고, 결국 예산으로 돌아와 자연드림교회의 2대 목사로서 세 번째 목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부임할 당시 교회는 사실상 개척교회였다. 그래서 김 목사가 교회 이름을 자연드림교회로 새롭게 바꾼 것이다. 그는 부목사 시절, 쉬는 날이면 일부러 예산을 찾았다고 한다. 장날에 맞춰 와서 국밥을 먹고 예산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계속 다졌던 것이다. 그 마음을 하나님이 기억하셨던 것일까? 결국 그는 예산에서 본격적인 목회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첫 목회지였던 산기슭의 교회는 ‘자연놀이터’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고, 김 목사가 꿈꾸던 녹색 목회를 구현하는 귀한 장이 되었다. 그렇게 자연드림교회는 녹색교회(2020년)에 선정되기도 했다. ‘스킨스쿠버 동아리 출신’ 목사의 자연스러운 행보였다.
자연에서 '노는 것'으로 올려드리는 경배
자연드림교회는 환경주인을 강조하고, 창조절기를 지킨다. 아울러 생태적 성만찬을 나누고, 자연신경과 사회신경을 고백한다. 특별히 사회신경을 예배에 사용한다는 것이 놀랍다. 필자가 언젠가 전도사 시절에 설교를 통해 사회신경을 언급한 적이 있는데, 아무도 모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심지어 사회신경의 ‘제1항’이 “우리는 하나님의 명하심을 따라 우주 만물을 책임 있게 보존하고 생태계의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사명에 있다”고 소개하며 더욱 놀라운 것 같았다. 감리교인들조차도 교단신학의 방향을 모를 수 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드림교회의 시도는 참 귀하다. 영성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내면을 들여다보는 데 천착하거나, 신앙생활을 단지 내세를 위한 수단으로 축소시키기 일쑤인 우리의 웃픈 현실 속에서 정말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같은 목사로서 정말 부러웠던 것은 ‘자연예배’였다. 김 목사는 오래 전 그의 첫 목회지였다는, 지금은 ‘터’만 남아있는 근처 서천제일교회에 교우들을 자주 데리고 나간다. 그가 비슷한 공간을 통해 책을 자주 소개하는 것처럼, 교회 밖으로 자주 나가서 즐겁게 노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이라는 하나님의 품 안에서 교인과 비교인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하나님의 숨을 함께 쉬려는 취지라고 했다.
작은 산자락에 자리잡은 그 교회에는 자연드림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대한 사랑을 실제로 표현할 수 있도록 주어진 특별한 선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어느 교회가 그런 공간을 쉽게 마련할 수 있을까. 그런 특별한 선물을 받은 자연드림교회가 많이 부럽다. 늘 자연을 사랑해오던 목사가 그런 공간이 생기면 자연스레 자연예배를 마련하여 교우들과 하나님을 찬미할 줄, 하늘은 진즉 알고 있었으리라.
그런 맥락에서 자연드림교회의 예배는 ‘예배당’을 자주 넘어선다. 가정 주일 애찬을 나누기 전, 교회 주변과 마을의 쓰레기를 줍는다. 특별히 평일에는 김 목사의 아내가 친환경 비누나 천연화장품과 같은 제품을 만드는 마을 동아리도 만들었다. 어린 아이들을 동원시킨 엄마들과 동아리 활동을 하며 자연스레 지역 사회 속에 생태적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실천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게다가 교회의 이미지를 손상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도’로 자연스레 연결되는 것이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자연드림교회는 교회 안에 작은 도서관도 운영하고 있다. 특별히 마을 어린이들을 위한 일이다.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이고, 달마다 계절마다 문화 행사를 열어 지역 사회를 섬겨왔다. 도서관에 생태 관련 도서들을 구비한 것은 물론이다. 도서관에서 만난 아이들을 데리고 야외로 나가기도 했다. 가령 텃밭을 함께 가꾸고, 신나게 놀기도 했다. 아이들의 부모들이 굉장히 좋아했다고 한다. 그렇지 않았으면 집에서 휴대폰만 들여다 보았을 것이 뻔하지 않았을까?
놀랍게도 김 목사는 도서관 회원들과 ‘숲 속 음악회’도 열었다. 어느 유명한 연주회에 참석하는 것과는 또 다른 기쁨과 행복이 김 목사의 가슴에 넘쳤다고 했다. 연주회에 참석한 ‘불신자’들도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개신교회가 어려움을 겪는 시절에 참 귀한 사역이었음에 틀림 없다.
김 목사는 최근에 교우들과 함께 하늘을 들여다보며 하나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천체망원경’을 구입했다고 한다. 그의 삶의 궤적을 따져볼 때, 전혀 엉뚱하지가 않다. 보통 ‘자연’이라 하면 땅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기 쉬운데, 김 목사는 교인들로 하여금 자연의 개념을 하늘과 우주로 확장시켜서 하나님의 장엄한 창조 세계 속으로 초대하고 있다.
한편 지역에 환경 문제가 있을 때는 관련 단체에 힘을 보태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가령 김 목사는 작년 8월 25일, 충남 당진 석탄 화력발전소 앞에서 ‘기후위기기독교비상행동’ 주관으로 열린 기도회에서 대표기도를 맡기도 했다.
“우리가 필요해서 만든 것이 우리 목숨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온전히 돌보지 못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잘못을 참회합니다. 탄소 중립을 위해 결단할 수 있는 용기와 책임감,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이끌어 갈 정의가 우리 가운데 있게 해주세요.”
‘예당2일반산업단지’ 조성을 반대하는 피켓을 들기도 했다. 교회 밖 현실을 목회와 분리하지 않는 것이다. 이 외에도 김 목사는 ‘아파트 대표회장’을 맡기도 했다. 참 놀라운 일이다. 그러면서 경비원, 미화원 등 아파트 직원들에게 여름 휴가비를 드렸고, 교회와 연계해서 ‘삼계탕’을 대접하기도 했다. ‘자연’에 대한 그의 영적 감수성이 교회 담장을 넘어 이웃들을 향해 나아간 것이다. 특별히 ‘휴가비’는 뜻이 매우 깊다고 할 수 있다. 그간 경비 노동자들에 대한 ‘갑질’ 소식을 뉴스를 통해 종종 접했던 것이 늘 마음에 남았던 것이다. 그는 그 거룩한 불편함을 구체화하여 주님의 사랑을 직접 전했다. 휴가비를 받는 이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쉽지만은 않은 목회의 여정
얼핏 보면 ‘재미있어’ 보이고, 낭만적으로 보일 수 있는 그의 활동은 모든 일이 그렇듯, 큰 수고로움과 고민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정 자연예배는 김 목사의 육체적 수고 없이는 불가능하다. 산자락에 자리 잡은 공간이나, 잠시만 관리를 하지 않아도 사용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나무를 자르다 ‘엔진톱’에 다리를 다쳐 구급차에 실려 나갔을 정도다. 그 외에 유기농 간식을 마련하거나 생태교육을 위한 준비물을 챙기려면 재정 지출의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농촌으로 내려온 교인들은 아직 담임목사의 목회적 중심을 완전히 수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물론 대부분의 교인이 담임목사의 마음을 잘 헤아려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가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듯, 이 모든 게 어쩌면 불편한 것은 물질이고, 소위 이득도 없는 수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편리함과 이득에 중독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의 수고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 운동과 닮아 있다. 사람들에게 당연하게 여겨지던 당시의 종교적 문법에 이의를 제기하며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 우리가 따르는 예수께서 바로 그렇게 ‘시대를 거스르며’ 불온한 사나이 아니었던가.
걱정할까, 사랑할까
기후 위기에 대해 걱정하는 마음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꼭 일치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가만 생각해보면, 필자는 길가에 피어 있는 풀꽃이나 가로수의 이름도 잘 모른다. 그런 처지에 늘 ‘환경 문제’를 고민해 왔다는 게, 갑자기 이상하게 여겨진다. 그리고 부끄럽다.
기독교인이 가져야 할 소위 생태적 감수성이 기후 현실에 대한 위기감도 포함되어야 하겠지만, 그 전에 이 세상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신 하나님의 감정과 시선을 이해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것 같다. 나무, 꽃, 바람과 같은 것들에는 한없이 무심한 채 기후를 논한다는 게 뭔가 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다.
재작년 6월의 기록이다. 어떤 연유인지 순간 멍을 얻어맞은 듯한 문제의식 속에 짧은 메모를 남겼었다. “아, 내가 자연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기후 위기를 걱정했구나!” 이후 1년이 다 되어 가는 2022년 4월 28일, 위기의 자연을 걱정하기에 앞서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한 목사와 그의 교회를 만나게 된 것이다. 자연드림교회, 김신형 목사, “작전에서 지내는 게 즐겁다”는, “자연이 너무 좋다”는, 사실 매우 단순한 그의 고백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재작년의 메모를 다시 찾아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부끄러웠다. 그런 메모를 끄적여 두었음에도, 필자에게는 아직도 자연이 ‘소비’와 ‘착취’의 욕망을 실현하는 장에 불과했다는 걸 보지 않기 어려웠다. 그러면서도 환경이 파괴되는 것을 걱정하는 모습을 억지로 부둥켜안고서.
사실 십수 년 간 설교자로 살아오면서 ‘기후 위기’를 참 많이 말했었다. 그러면서 스스로 대단하게 여기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나처럼 생태적으로 설교하는 사람도 있을까?” 싶어서 말이다. 그러나 자연드림교회와 김신형 목사와의 만남은 우리 식의 환경운동이 아니요, 그저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게 한 환경이 파괴되어 결국은 인간이 큰 피해를 본다는 논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논리라면 자연은 여전히 우리를 위한 수단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그건 사랑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주라면 세상은 그분의 작품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지구라는 작품의 작가로서 세상을 사랑하신다. 뺨을 스치는 바람, 온 몸을 감싸는 햇빛, 들판의 예쁜 풀꽃을 우리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리스도인은 다름 아니라 자연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그것이 자연을 바라보는 우리의 신앙적 토대다.
조심스러운 질문이지만, 신학을 공부한 인터뷰어로서 한 가지를 물었다. “한국교회는 기독교 신앙의 궁극적 목표를 ‘천국에 가는 것’으로 두는 분들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왜 이 땅에서 사회 참여(기후 생태적 삶)를 해야만 하나요? 어차피 천국으로 갈 건데?’라고 물으신다면, 어떤 목회적 답변을 줄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돌아온 답변은 흥미로웠다. “천국의 모델로 에덴동산을 생각해볼 수 있다면, 결국 우리가 돌아갈 천국도 ‘사람들만’ 드나들어갈 곳만은 아닐 것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웃 사랑’의 범주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귀한 답변이었다.
다시 꿈틀대는 욕망
예산에 내려가던 작년 4월 28일은 코로나 방역지침이 대대적으로 변경된 이후다. 특별히 종교시설의 ‘취식금지’가 해제되었으니, 반갑다하면 반가운 소식이다. 필자도 개척교회 목사로서 교우들 앞에서 ‘설교만’ 하는 게 영 죄송했던 터였는데, 이제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교제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구석이 찝찝한 이유는 무엇일까?
코로나 발생 직후, ‘어서 빨리 예배가 회복되었으면’ 이라는 말만 3년 동안 되풀이하던 한국교회가 결국에는 아무런 철학적/신학적 성찰을 도모하지 않은 채 그토록 바라던 ‘예배의 정상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것이 온당한 일일까? 김신형 목사의 말이 그래서 더 뼈아프다.
“코로나19를 2급 감염병으로 조정하게 되면서
억눌렸던 우리의 욕망이 다시 꿈틀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서 절제하는 모습과
모든 피조물들과 조화롭게 어울려 사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목사의 지적처럼, 코로나19는 하나님의 종교적 심판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자초한 생태적 심판일 수 있다. 또한 어느 신학자의 말처럼, 생태적 감수성이 없는 교회는 어떤 거룩한 언어로 표장한들 결국에는 사적인 이익집단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드림교회의 존재와 김신형 목사의 목회철학이 참으로 고맙다.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 속에 깃든 하나님의 숨결을 맛보는 것을 신앙의 알짬으로 삼았으니 말이다.